수세미장갑이 내 삶에 없는 이유
집안청소를 하다가 초등학생 때 만든 과학경시대회 발명품을 찾았다. 초등학생의 발명에는 패턴이 있다. 고무장갑과 수세미를 더한 수세미장갑, 치약과 칫솔을 더한 무언가 같은 것들. 상대적으로 미래인 지금, 나는 수세미장갑도 치약칫솔도 쓰지 않는다. 팔기는 하나?
‘미래에는’, ‘가까운 20X0년에는’, ‘머지않아’… 이런 기술을 만나게 될 것이라는 책과 기사, 영상에 눈을 반짝였다. 기술의 이름도 하나같이 현란해서 그게 뭔지도 모르고 무조건 좋게 생각했다. 기술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준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그 기술이 만들어져 내 앞에 놓였을 때, 나는 그것을 사용하지 않았다. 기술 하나만으로는 아무 것도 바뀌지 않았다. 여러 이유를 이야기할 수 있다. 수요 예측이 잘못되서, 디자인이 못생겨서 등…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모두 ‘기술에 휘둘렸기 때문이다’ 라고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
기술은 문제를 해결하는 도구일 뿐이다. 이유 없이 기술은 생겨나지 않는다.
사실 도구를 잡고 휘두르기만 하면 매우 편하고 즐겁다. 어떤 목표를 위해 무엇을 만들고 있는지 생각할 필요가 없고. 휘두르면 적당히 무언가가 만들어지니까 생산적인 느낌이 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초라해진다. 들인 시간에 비해 성장은 없고, 누군가의 오더 없이는 스스로 사고하고 행동할 수 없게 된다. 어떤 경우에는 ‘내가 만든 것이 괴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의도와는 다르게 사회에 좋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할 수도 있으니까.
변명은 언제나 가능하다. 그냥 코드를 짰을 뿐이니까. 버그니까 고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결과는 명백히 의도된 동작. 즉, 기능(Feature)이다. 이것이 온갖 문제와 악영향을 초래한다면 어떤 누구도 버티긴 힘들 것이다.
극단적이고 비현실적인 생각이긴 하다. 하지만, 틀리지는 않을 것 같다. 기술만능주의에 빠져서 실제의 꿈을 놓친다면. 이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이해하지 않은 채 그저 앉아 코드를 짜고 기술을 휘두른다면. 그건 꽤 무서운 일이 아닐까.
기술을 도구로서 사용해야한다.
기술에 의해 휘둘리지 않아야 한다.
기술 자체는 절대적인 정답이 아니며(기술만능주의의 경계),
도구를 쥘 때에는 그 이유를 잊어서는 안된다.
‘비즈니스를 이해하는 개발자’ 등도 궤를 크게 달리 하지 않을 것이다. 문제를 똑바로 쳐다보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만드는 일을 해야 한다.
매니저 및 상위 조직장들은 하려는 것이 정확히 무엇이고, 어떤 단계적 목표가 있는지 설명하고 논쟁해야한다. 개인도 계속 묻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요즘 들어 나도 그런 부분이 많이 흐려졌던 것은 아닐까 반성한다.
기술을 도구로 사용하자. ‘전구’를 발명한 것은 필라멘트나 빛을 내게 하는 것 자체가 좋아서도 있겠지만. 어둠을 극복한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다치지 않을 수 있고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겠다는 문제를 풀기 위해서가 아니었나.
… 아님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