롱 베케이션

빈 자리가 말해주는 지난 날의 나에 관하여

이찬희
2 min readFeb 11, 2021
안개산책 by 쥬드 프라이데이 (https://grafolio.naver.com/works/286057)

빈 자리가 크게 느껴지는 사람들이 있다. 뛰어난 업무 능력, 말도 재밌고, 생각도 깊은 사람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일을 시작하면서 생각했다.

몇 년 동안 쭉 달리기만 했다. 그러다보니 자존감은 높은데 지식은 부족해진 것 같았다. 당연히 몸도 문드러졌다. 학교를 다니면서 좋았던 것은, 반복적인 동작과 생각에서 벗어나 아무 것도 하지 않을 수 있는 짧고도 긴 방학이었다. 어깨에 바람을 빼고 머릿속을 ‘조각 모음’해서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비용을 지불해 스스로에게 긴 방학을 주기로 했다.

긴 휴가를 쓰기로 했다. 같이 일 하는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하던 일이 무엇이고 뭘 해야 하는지 기록하고. 없는 기간 동안 누가 무엇을 대신할 것인지 상의했다. 그리고 알았다. 내가 잘못된 방향으로 빈 자리가 큰 사람이 되었다는 걸.

돌아보면 내가 빈 자리를 느꼈던 사람들은 그리움과 아쉬움, 그리고 약간의 열받음(주로 그들의 이상한 코드를 볼 때)을 남겼다. 하지만 그들만 아는 정보는 없었고, 그들의 고민에 나도 한 편을 비집고 들어갈 수 있었다. 빈 자리가 있어도 금방 돌아올 수 있었다.

나의 빈 자리를 바라보며 고민할 수 밖에 없었다. 주변에 뭘 하고 있고 어떤 고민을 하는지 많이 이야기한 걸까. 권한을 잘 위임, 분배하고 힘이 들 때 같이 맞들어준걸까. 빈 자리가 족쇄가 된 것은 아닌가.

개인은 조직의 족쇄가 되어서는 안되며, 조직도 개인의 족쇄가 되어서는 안된다. 그래야만 서로가 서로에 의해 성장하고, 회복하고, 결정할 수 있다. 긴 휴가는 나의 빈 자리를 가늠해보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롱 베케이션. Long Vacation.
휴가가 끝나 자리로 돌아갔을 때는 부족한 점을 채워나갈 수 있기를.

+
여담으로, 이래서 휴가를 많이 가야하는 것은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리프레시 휴가 등의 ‘회복 및 회고 수단’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물론 내가 더 쉬고 싶은 것은 절대 아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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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희

Building invisible things for visible one — Software Engineer @​AB180. Founder @​sullivanproject.